
혼불은 내용의 구성도 정말 멋지지만 글이 더 멋지다.
작가님은 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쉽게 쓰고 읽는 가벼운 웹소설이라기 보단 문학에 가까운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는데 일부만 적어보려 한다.
작가는 태희가 느끼는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저를 죽게 하고, 저를 살게 하는, 이 신비로운 힘은 무엇입니까?
어느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와, 들여보내 달라 문을 두드리던 너는 세상이 내게 선사한 악의. 나의 불행. 나의 운명. 나의 나 락. 몰락의 인도자이자 공포의 탈을 쓰고 온 사랑. 네가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서 네게 마중을 나갈 것이다.
나를 패망으로 이끄는 너의 손을 잡고 네가 걷는 길을 추종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너와 가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야 말겠다.
묘정이 느낀 이별이다.
이별이란 이런 거구나.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 말을 걸어도 나를 봐주지 않는 것, 나는 이곳 에 있으나 당신은 이곳에 없는 것, 뒤늦게서야 어쩌면 당신이 아주 조금쯤은 나를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장기를 두는 선사를 만난 태희의 질문에 선사가 한 답이다.
초를 잡았을 때는 안 뵈이던 게, 한을 잡으면은 뵈여. 어느 한 쪽을 이기게 해야겠다 싶다가도, 지고 있는 쪽에 또 긍휼 한 마 음이 들어서는 일부러 수를 돌아가기도 허고, 이쪽저쪽 왔다 갔다가 하다 보면은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게 재미져.
이 짝이 이겨도 내가 이기는 것이고, 저짝이 이겨도 내가 이기는 것이지. 반대로 이짝이 져도 내가 지는 것이고, 저짝이 져 도 내가 지는 것이여.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매한가진데, 참 신기허게도 종국에는 마음이 훼까닥 기울어.
결국 사람 마음이란 것이 한쪽으로 꼭 치우치게 돼 있데…
초의 편에 서서 장기를 둘 땐 보이지 않던 것이 한의 편에 서 서 장기를 두면 새롭게 눈에 보인다.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 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고 마음 또한 시시각각 달라진다고 했다.
재겸이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하는 생각이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찾아오리라는 낙관이 볕처럼 드는 순간이 있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거라는 비관이 한 보 앞서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죽고 싶어 지겠지.
그럼에도 나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으로 살 것이다.
사람의 다정함을 간직한 채, 정다움을 믿으며, 아름다운 압화처럼 간직한 채로, 소중하고 연약한 책갈피처럼, 그것이 인간 다운 것이고 인간적인 것임을 믿으면서, 그렇게 살 거다. 설사 나의 앞날이 궁금하지 않더라도. 나는 숙제처럼 오늘을 풀어내고 내일을 기다릴 거야.
그러니 나는 깨어 있을 것이다.
윤태희는 어느 순간 '식구(食)'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것.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누군 가를 위해서 불 하나를 켜놓고 자리를 비워 놓는 것. 왜 수저 하 나를 더 놓았느냐고 구태여 묻지 않는 것.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마음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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